나에게 엄마는, 엄마에게 나는. 생각하다.


-최근 가족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엄마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보단 오빠를 더 챙겼다. 엄마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런 행동은 엄마의 은연 중 행동에서 너무나도 여실히 드러났다. 학생 땐 아니겠지 하고 외면했지만 엄마의 진심을 알게된건 19살 재수시절이었다. 그 때 엄마는 자궁에 혹을 떼는 큰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마취에서 깨어날 때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엄마 입에서 나온 이름은 오직 오빠의 이름뿐이었다. 그 때 나는 재수생이었고 매일 엄마의 병수발을 들었던건 오빠가 아닌 나였다. 그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 엄마에게는 더 아픈 손가락이 있구나.

그 때부터 나의 반항심이 튀어나왔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단 한번도 엄마에게 반항이란걸 해본적이 없던 착한, 아니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갖고 있던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착하게 굴어도 엄마의 사랑은 내가 아닌 오빠에게 향해있다는걸 그제서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착하든, 나쁘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고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기대하는 것이 점점 사라져갔다. 받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연히 주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교를 서울로 진학하게 되며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게 되면서 어찌나 아픈 시간들을 버텼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암흑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 땐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나 오빠에 대한 증오심도 매우 컸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온전히 미워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나의 마음을 증오에서 연민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빠와는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사과도 하며 마음에 졌던 응어리를 많이 풀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와는 다르게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나도 또래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되었고 처음 사귄 남자친구 얘기를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엄마와 나누고 싶어 꺼냈지만 니가 무슨 연애를 하냐며, 당장 헤어지라는 소리만 듣고 끝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누굴 만나든 엄마에게 얘기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내 연애에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내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의 사생활을 캐지 못해 안달이난 사람처럼 이렇게도 떠보고 저렇게도 떠보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나의 마음을 숨기기에 바빴다. 결국 엄마에게 듣는 소리는 '음흉한 년'이라는 소리 뿐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을 때 내 핸드폰을 뒤져보려고 시도한 엄마가 핸드폰에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걸 보고 한 소리였다.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말이든 듣고 싶어 했다.
 24살, 전남자친구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우연히 엄마는 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장 헤어지라며 불호령이 떨어졌고 나는 늘 그래왔듯 알겠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일말의 죄책감 없이 엄마를 속이며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내가 전 남자친구와 성관계 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날 엄마에게 들은 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니가 창녀야? 몸파는 년이야? 왜 아무데서나 뒹굴고 다녀?

나는 울면서 그 말을 한걸 후회하지 말라고, 도대체 나에게 얼마나 더 상처를 줘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따져물었지만 엄마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엄마이기를 떠나 같은 여자에게 이런 말을 듣는데 세상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게 설령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엄마가 나에게 준 상처를 얘기하자면 사실 끝이없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엄마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는 그저 자신이 받아온 것을 그대로 오빠와 나에게 준 것 뿐인데 싸가지 없는 딸년은 그 마음도 몰라주고 지가 잘랐다고 소리만 지르고 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당연히 답답할 뿐인 것이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자, 친구이자, 엄마 자신인 것이다. 내가 당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면서도 자꾸만 당신의 인생을 나에게 반영시키려 하는. 한 때는 이런 엄마에게 나를 동일시시켜 괴로워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젠, 나에게 엄마는 엄마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너무나 가엽다. 얼마나 사랑을 많이 못받았으면 자신의 딸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쑤시고 뒤집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지금도 마치 그 때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엄마를 보며 나의 자식에게 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최선을 다해 사랑하리라 수없이 다짐해왔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사랑을 온전하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으득으득 간다. 말하다.


-생리가 시작됐다. 저번달에 한 번 거르고 배란유도제를 맞아 겨우 시작하게 됐는데 이것때문인지 어제의 꿈 때문인지 커디션이 영 좋지 않다. 어젠 있지도 않은 남친이(ㅋㅋㅋ) 바람을 피우는 꿈을 꾸질 않나, 또 다른 꿈에서는 내가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어쨌든 심란한 상태에서 눈을 떠보니 아랫배가 찌르르 아파와서 화장실에 가보니 역시 생리가 터진 것이었다. 메스꺼움이 가라앉질 않아서 오전에는 집에서 내내 누워서 쉬다가 공부안하면 누가 해주나 싶어서 기어코 일어나서 도서관에 나왔다. 엄마는 오늘 같은날은 좀 쉬라고 했지만 주말에 쉬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어거지로 몸을 이끌고 기어나왔다. 주말에는 왜 쉬었냐면 뒷골이 자꾸 당겨서였는데 한의원에 가니 피로가 많이 누적됐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좀 쉬라길래 이 때다 싶어 쉰 것이었다. 물론 주말에 쉰 댓가를 지금 치르고 있지만 흑.

-공부를 하는 것이 언제나 괴로운 것은 아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괴로운 기분이 올라올 땐 오히려 공부할 때가 가장 누그러지기도 한다. 물론 직장을 갖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마 워커홀릭이 되었을수도...)

-이를 으득으득 갈며 공부한다.

교회단체를 싫어하는 예수쟁이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요? 만나다.


-저는 교회단체가 싫습니다. 미숙한 저의 눈으로도 훤히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기에 저는 제 자신에게 생각보다 정직한가봐요. 게다가 그런 것들을 제가 예수쟁이라는 이유로 감싸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바꾸지도 못하겠는건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교회단체가 싫은 예수쟁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비난의 시선으로 그 사람들을 보는 제 자신이 역겨워요. 그렇다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건 또 싫고요.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건 아녜요. 저는 그냥 예수님이 너무 좋은 애거든요. 저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예수님이 너무 좋은데 마음속 가득히 반항심만 가득찬 사춘기 딸은 도대체 어디에 서있어야 하나요?

-예수님. 결혼 하기전 섹스를 하면 안되나요? 성경에서는 배우자 이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나와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연애도 하면 안되나요? 순결이란 무엇인가요?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하고 성경을 읽을 순 없지 않나요? 왜 유독 어느 한 곳에서만 성경을 직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나요? 저는 이해가 가질 않아요. 이해가 간다면 전 섹스를 멈출 수 있어요.
 예수님.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교회가 싫어요. 교회사람들이 싫어요. 나를 죄인취급하는 저 사람들이 정말이지 너무 싫어요. 저는 제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어요. 근데 또 웃긴건 이 죄책감 또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교육으로 인해 세뇌된 죄책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화가나요.

-도대체 저와 같은 예수쟁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옳은 것은 무엇이며 그른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옳은 건가요 그른건가요.

막간을 이용한 일기 말하다.


-최근 트위터에 아주 푹 빠져버렸다.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은데 첫번째는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어서 인 듯 하고, 두 번째는 너무 쓸데없어서 지인들에게는 할 수 없는 뻘소리를 부담없이 지껄일 수 있어서인 듯 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트위터는 도피처 혹은 안식처 같은 느낌. sns에 이렇게 푹 빠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곧 지겨워지게 될 줄 알았는데..네. 트잉여가 여기 있네요.

-지금은 인강 사이트가 또 말썽이라 접속이 안되는 틈을 타서 쓴다! 일기!

-어젠 토익을 보고 왔다. 제발 이번으로 끝나길 수없이 바랐는데 또 리딩 마지막 지문은 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딱히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점수는 기대하고 있으니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가보다.
 며칠 전, 아빠와 저녁에 운동을 하며 얘기를 나누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연스럽게 나의 결혼얘기를 하게 되었다. 아빠는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니 시부모님이 어떤 분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갖고 있을테니 지레 겁먹을 필요까진 없다고. 물론 인성이 바르신 분들이면 더욱 좋겠지만. 반대로 나는 시부모님께 어떤 것도 기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뭔가를 받는순간 보답을 해야할 것이라고.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이 아닌 강제적인 보답은 서로에게 전혀 이득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애초에 받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마 아빠의 말이 더욱 일리 있을수도 있다. 정말 좋은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어줄, 아니 나와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게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면 쉽게 잃기 마련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도, 다이어트도 죽을 힘을 다해 얻는다면 아마 쉽게 잃지는 않을 것이다. 힘들었던 만큼 내가 소중히 여겨줄테니까. 그러니 지금의 시간을 너무 억울해하진 않는걸로!

-저번 토요일엔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하루가 다 가도록 수다를 떨었는데 어쩐지 자꾸만 이야기의 주제가 결혼으로 흘러가서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나까지 세명이서 만났는데 셋다 애인도 없는 주제에 결혼을 논하다니...얘들아 우리는 자격 박탈이라고!

-이글루스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자꾸 여길 떠난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초조해진다. 아직은 안돼요. 떠나지 말아요. 우리 함께 여기 있어요. 그러니 이글루스! 힘을내요 제발.


결국엔 행복해지려고 하는거니까. 말하다.


-죽을 맛을 보며 하고 있는 다이어트도, 공부도 결국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이상 절벽끝으로 몰아넣지 않기로 했다. 현재의 내가 이렇게나 불행한데 미래의 행복이 무슨 대수인가 싶어서이다. 어쨌든 행복은 나 스스로 만들 수 밖에 없는 거니까 나는 나의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혜림이는 그 사람과 지나칠때마다 친한 언니를 붙잡고 울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고 했다. 무심하게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면서 불현듯 몇달전의 내가 떠올라 마음이 미어졌다. 그 순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느것도 보이질 않는다.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지금 당장은 부질없게 느껴지겠지만 결국엔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동감하게 되고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혜림이는 좋은 사람이니 그 사람보단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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